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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우 (b.1983)
서울 출생. 물리학과 컴퓨터과학을 공부한 뒤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중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2011년 병역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현재 영화 연출과 촬영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상영작 List of Works


클린 미 Clean Me

24’, sound, color, 2014
출소한 병철은 법무보호복지공단에 입소한다. 그곳에선 모두들 청소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없는 것처럼 Like We Are Not Here

12’, sound, color, 2016
광주일고와 화순고 야구부가 경기를 펼치고 교보생명 보험설계사는 월풀세탁소 주인에게 전화를 건다. 연기학원에 다니는 소년들은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다. 영화 스태프들은 그 모습을 촬영한다.


백서 A Silk Letter *
50’, color, sound, 2010
산책을 나갔다 집에 들어온 성운은 병역거부 소견서를 쓰다가 잠이 든다.
* 백서: 흰 비단에 가는 붓으로 쓴 밀서(密書)


ⓒ강상우 Kang Sangwoo, Courtesy of the artist.



영화 백서(2010)의 주인공 성운은 “당신은 왜 군대에 가지 않으려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위법’ 행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 국가가 납득할 만한 논리적인 이유를 정제된 활자로 모두 표현할 수 있을까.

아감벤은 인간의 잠재성, 즉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 무한한 가능성이 아닌 인간의 ‘할 수 없는 것’에 주목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이란 존재는 잠재성의 양태로 존재하며, 누군가이며 동시에 아닐 수 있고, 할 수 있는 만큼 하지 않을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1]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무한한 잠재성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자유는 나머지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와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때 인간의 잠재성은 개인이 “자신의 역량을 축적하고 자유롭게 지배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능력’으로 전환”[2]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잠재성을 펼칠 자유는 자본과 결탁하여, 능력만 있다면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으며, 어떤 것이든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형성한다. 부모님은 “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로 아이들을 북돋는다. 그리고 독서실에서는 ‘R=VD’[3]가 적힌 포스트잇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잠재성을 지닌 만큼이나 “고유한 비잠재성(‘할 수 없음’ *필자)의 역량을 가진 동물”[4]이지만,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신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할 수 없다’는 대답은 일종의 자유의지에 대한 반역이자 개인의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말로 치부될 뿐이다. 이때 권력은 인간의 잠재성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간을 비잠재성으로부터 분리함으로써 더 은밀하게 작동한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이야기를 방송에서 공개한 작사가 김이나는 이후 “100% 불임인데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것”이라는 루머에 시달려야만 했다. 비혼을 결심한 이들은 외모나 능력이 ‘달려서’ 혼자 산다고 힐난하는 시선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군인이 되지 않겠다는 이들의 선언은 겁쟁이들의 비겁한 변명이자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위법행위로 판결받는다. 동성애자들은 얼마든지 이성애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라는 중독에 빠진 정신이상자로 규정되었다. 레즈비언들은 교정강간이라는 위협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야 하고, 상당수의 성소수자들이 동성애 ‘전환 치유’를 목적으로 캠프에 들어간다.

“비잠재성으로부터의 소외만큼 우리를 빈곤하게 하고 우리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없다. 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은 여전히 저항할 수 있다. […] 반면 스스로의 비잠재성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은 무엇보다 이 저항 능력을 상실한다.”[5]

성운은 군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마저 다 적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방 한쪽에 눕는다. 그가 잠에 빠진 장면 뒤로 인서트 쇼트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난데없이 한 마리의 고양이가 등장하며 영화는 끝난다. 고양이가 되는 꿈이라도 꾼 것일까. 백서의 중반부에서 성운의 남자친구는 그에게 쏘아붙인다. “밖에선 손도 잡지 못하면서.” “그냥 내가 고양이였으면 좋겠어.” 어쩌면 그가 군인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군인이 아니라 차라리 고양이가 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집 밖에서 동성 연인의 손을 잡는 순간, 안락하다고 믿어왔던 그 모든 평범한 일상적 풍경은 정반대로 우리를 지켜본다. 그 순간, 나 역시 그냥 내가 고양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도처에 널린 평범한 일상의 소리와 이미지가 이따금 나를 공격한다. 백서클린 미(2014) 두 작품에서 사운드는 편안하다기보다는 다소 공격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백서클린 미의 인물들은 가장 평범한 일상의 이미지 속에서도 사운드의 습격을 받는다. 클린 미의 경우, 사적인 공간인 화장실에 주인공 병철이 들어가 있는 장면에 삽입된 사운드는 흡사 공포영화에 등장할 법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병철이 가장 안락하게 지내야 할 집안으로 창밖에서 나는 트럭의 방송 소리가 침입한다. 밤에도 그는 동거인이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친다.

두 작품과 다르게 우리는 없는 것처럼(2016) 속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에 침입하는 자는 감독 자신이다. 그는 노부부에게 “우리(연출부)는 없는 것처럼”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부응하듯 노부부는 ‘자연스럽게’ 집의 대문을 열고 나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이 집을 나서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적인 이미지가 실은,  앞서 감독이 한 번만 다시 대문을 열고 나오기를 요구한 결과임을 관객은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일상이라고 믿고 사는 모든 모습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연출한 것인지도 모른다. 동성 연인의 손을 잡는 행위는 여성혐오적이고 호모포빅한 한국의 일상적인 ‘연출’에 어긋나는 모습일 것이다. 그 때문에 당사자들은 검열당해야 하며, 스스로 검열하게 된다. 우리를 ‘없는 것처럼’ 만들려는 일상의 공격은 그 순간 시작된다.



고양이가 되고 싶어

김민규

아래의 글은 내가 고양이가 되고 싶었던 순간들을 수집한 것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더 랍스터(2015)를 보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영어 단어와 표현들을 배우는 수업 시간. 같은 테이블에 앉은 조원 한 명이 난데없이 “민규씨는 헤테로섹슈얼(heterosexual)인가요?”라고 질문한 순간, 옆에 있던 조원이 “요즘은 그런 거 함부로 물어보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라면서 웃었다.
"딱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 너 좋아해. 네가 남자든 외계인이든 이젠 상관 안 해. 정리하면 더 힘들어서 못 해먹겠으니까. 가보자 갈 데까지. 한번 가보자" 2007년 7월 31일, MBC에서 방영되었던 커피프린스1호점 10화 명장면. 해당 대사는 남장을 하고 커피숍에서 일하는 은찬(윤은혜)에게 한결(공유)이 고백하는 대사. 다음 화에선 은찬이 알고 보니 여성임이 밝혀진다.
수험생이던 시절, 수능을 잘 보면 예대 무용과 학생들을 소개해주겠다고 외삼촌이 약속했다.
커밍아웃하자 친구가 내게 한 말. “이거 몰래카메라 아니야?”
[…] 동성애 정체성도 인지의 문제이므로 결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다양한 조사에 의하면 이성애자 중에서 일부가 동성애자로, 또한 동성애자 중에서 약 50%가 이성애자로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동성애에는 유동성이 있으며, 특히 청소년에서 그 유동성이 큽니다. 청소년은 동성애를 "실험적"으로 경험하더라도 스스로를 동성애자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이들을 대상으로 치료한다면 중독에 빠지기 전이므로 보다 쉽고 빠르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 
'아름다운 결혼과 가정을 꿈꾸는 청년모임(아가청)’이 펴낸 책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한 21가지 질문» 중[6]
“여자친구 없어요?” 혹은 “여자친구 있어요?”로 시작하는 모든 대화.
군대에서 보낸 대부분의 시간.
맞후임의 결혼식에 간 날. 다들 여전했다.
명절. 반가운 얼굴들을 보는 게 좋다가도 아, 혼자 있고 싶다, 아직도 모솔이냐고 그만 좀 물었으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사랑은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며 연애란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밖에서 데이트할 때.
“저기서 내가 남자 둘이 파스타 먹으러 갔다가 게이 취급받은 거 아니야” “진짜? 그럴 만도 하겠다” 이탈리안 요리를 파는 체인점 앞을 지나며 들은 대화.
그러고 보니 나도 모 레스토랑에서 서버에게 “남자 두 분이서 이런 데 오는 게 흔치 않은데 신기하네요”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주팔자를 보는데 결혼할 사주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중학교 친구 그리고 함께 다니던 학원 선생님에게 커밍아웃한 순간.
시간이 흐르고 스승의 날에 처음으로 커밍아웃했던 그때 그 학원 선생님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여쭸을 때 받은 문자. [요즘 기도를 많이 하고 있어. 민규도 한 번 같이 나와서 기도해야 하는데. 너도 문제가 많잖니.]
종로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여긴 동성애자들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조언해주셨다.
중고등학교 때 체육시간. 농구도 축구도 하기 싫은 나는 늘 그늘에 앉아 있었고 그늘은 늘 ‘이상한 아이들’을 위한 자리였다.
졸업앨범에 쓰였던 말들. ‘fag’[7]라는 단어의 뜻을 덕분에 처음 알았네!
각종 MT 및 과 행사들. 특히 여장 대회. 남자들이 여장을 하고 ‘수치스러워’ 하는 것을 보는 게 왜 재밌지?
“아빠한테나 다른 사람들한텐 말하지 말고.” 엄마가 했던 말.



  1. 조르주 아감벤,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벌거벗음», 김영훈 역, 인간사랑, 2014, 75쪽.
  2. 위의 책, 75쪽.
  3. R=VD는 ‘생생하게(Vivid) 꿈꾸면(Dream) 이루어진다(Realization)’의 약자를 조합한 것으로, 자기계발 분야 스테디셀러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 (생각학교, 2017)에서 증명한 꿈의 공식이다. “[청소년을 위한 꿈꾸는 다락방]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공식 R=VD”,  <채널 예스>, 생각학교 제공, 2018-01-24. (링크)
  4. 위의 책, 75쪽.
  5. 위의 책, 76-77쪽.
  6. “동성애를 치료하려는 것은 동성애자에게 인권침해 아닌가?”, <크리스천투데이>, 2017-11-26 (링크)
  7.  남자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단어 Faggot를 줄여쓴 명칭. (위키피디아)


김민규 (b.1992)
영화에 대해 관심이 많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 독립 매거진 «txttxttxt»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