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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椒
2017.03.04

작년 구월에 오 씨는 교토에 사는 친척에게 다녀왔다며 오타이산(太田胃散)을 선물했다. 언젠가 오 씨가 준 소화제가 좋았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 듯했다. 위장 질환에 있어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는 그 약은 소화불량뿐만 아니라 위염이나 숙취 해소에도 좋았다. 나처럼 위장장애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이미 유명한 약이었는데 심지어 학부 선배는 프랑스에서 그 약을 알게 됐다고 했다.

“오 씨는 덕을 많이 쌓았을 거예요.”

지난겨울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올해 오월에 작은 서점에서 오 씨와 우연히 재회했다. 오타이산을 먹고서 혼잣말로 감사 인사를 한 게 수십 번이었다. 그 정도면 덕이 많이 쌓였겠다 싶었다.

“신흥종교에 빠진 줄 알았어요.”

그러한 설명을 들은 오 씨가 안심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왠지 그럴 법한 사람이어서… 맞다.” 오 씨는 갑자기 말을 흐리며 가방에서 양갱을 꺼냈다. “이거 좋아하죠?” 내가 작년 구월에 오 씨에게 받은 선물에는 야쓰하시와 양갱도 있었다. 야쓰하시는 계피 향이 들어간 기와 모양의 전병으로, 이전에 먹어본 적이 있었다. 말차와 벚꽃이 들어간 양갱은 처음이었는데 벚꽃잎 안쪽에서 번지는 붉은 기운과 닮은 빛깔이 먹기 아까울 만큼 예뻤다. 정작 맛은 편의점에서 파는 오백 원짜리와 다르지 않았다.

모두에게 잘 베푸는 오 씨였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베푸는 것은 아니었다. 오 씨에게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오 씨가 나를 더 챙기는 까닭이 치리멘산쇼(ちりめん山椒)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치리멘산쇼는 연둣빛 산초 열매가 들어간 멸치조림으로 회사 급식을 맛없어 한 오 씨가 싸 온 밑반찬 중 하나였다. 잔멸치 사이에 언뜻 보이는 연둣빛이 싱그러웠다. 다른 동료들은 호기심에 한 젓가락씩 먹어보고는 강한 산초 향에 거부감을 표했다. 입맛이 없던 나는 오 씨의 반찬에 손대지 않았으나 쌀밥과 치리멘산쇼만 먹는 오 씨가 왠지 측은해 보여 밥을 다 먹어갈 때쯤 치리멘산쇼를 집었다. 설익은 열매의 색과 닮은 맛이었다. 조림 양념은 한국의 멸치볶음과 다르지 않았지만, 산초 열매 때문에 맵고 알싸했다. 매운맛은 통각의 일종으로, 온도감각이 합쳐진 피부 감각이라고 언젠가 건강상식 프로그램에서 본 게 기억났다. 혀가 감도는 맛이 미각인지 통각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으나 이 개운한 맛을 앞서 먹은 고등어조림이 해치는 것은 분명했다. 나는 뒤늦게 오 씨를 오해했다는 것을 알았다. 오 씨가 다른 반찬을 먹지 않은 까닭은 오기가 아니라 그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였다. “개성 있는 맛이에요.” 나의 극찬에 오 씨는 오랜만에 치리멘산쇼의 맛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다며 즐거워했다. 내가 아는 오 씨는 취향이 있고, 그 취향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거래처 부장님과 도가니탕을 먹으러 간 적이 있어요. 그분이 국물에 부추 무침을 넣으면서 이게 더 맛있다며 제 뚝배기에도 부추 무침을 넣었어요. 제가 그 전에 싫다고 했는데도 말이에요. 결국, 억지로 먹다가 체해서 고생했어요.” 그런 오 씨가 싫어하는 사람은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부류였다.

오 씨와 나의 다른 공통점은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책을 읽는 것이었다. 오 씨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작가의 산문집을 번역해 나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번역을 받고 오 씨와 친해진 기분이 든 것은 오 씨가 돈보다 자신의 시간과 품을 더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회사를 그만두고 연락한 적이 없었다. 다른 회사 동료보다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우리가 상대에게 가진 호감은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는 공통점에서 비롯했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 무리해서 이어나가지 않는 관계를 의미했다. 오 씨는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나의 퇴직 사유를 묻지 않지 않은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오 씨를 섭섭하게 여겼다.

작년에 나는 만성이 된 소화불량 때문에 매일 불쾌한 기분으로 지냈다. 몇 년 전에 생긴 소화 장애가 갈수록 심해졌다. 예전에도 건강한 체질은 아니었지만, 딱히 병원에 갈 만큼 아프지도 않았다. 전부터 내 주위에는 위장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회사 후배 중 하나는 만성 역류성 식도염으로, 대화 중에 조용히 사라졌다 나타나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본인이 병을 내색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나는 짜증과 말실수가 잦아지면서 그때 후배가 짐작했던 것보다 많이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들은 밥을 거르겠다고 하면, 흰 죽처럼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권했다. 먹어서 문제가 생겼는데 소화가 잘되는 것으로 먹으라는 게 아이러니했지만, 소화되지 않는다고 계속 끼니를 거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만 마셔도 속은 울렁거렸고, 무엇보다 움직일 기운이 나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줄이세요.” 나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의사는 일반적이며 일상적인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내린 처방은 단순했다. 제시간에 밥 먹고, 잠자고, 일어나기. 연말이 되어 나는 치료와 회사를 동시에 관뒀다. 나의 처방은 다른 식으로 단순했다. 먹지 않을 수 없으니 먹자, 하지만 억지로 받아들이지 말자, 위화감과 불편함을 참지 말자, 먹고 그냥 토해버리자. 그리고 새해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토해낸 것들은 시금치 수프를 먹은 날에는 초록색이었고, 카레를 먹은 날에는 짙은 노란색이었다. 몸은 정직했고, 체증의 이유도 명확했다. 먹기 싫은 음식을 먹거나, 너무 많이 먹거나, 소화가 안 된 채로 또 먹거나, 먹고 바로 누우면 꿈꾸는 와중에도 구토감에 시달리다가 돌연 화장실로 달렸다. 무언가 모양이나 크기가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호리병에 욱여넣고서 다시 손가락을 넣어 힘겹게 빼내는 기분이었다. 내 안에 있던 것들은 보통 따뜻했고, 알맹이가 있었다. 나는 수면에 떠오른 단서로 내가 삼킨 것들을 유추하다 이내 변기로 흘려보냈다. 지난날들과 같이.

서점에서 나온 오 씨와 나는 근방에 있는 오 씨의 단골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천장 조명은 주황빛이었고 벽 선반 아래에는 파란 알전구가 달려있었다. 푸른 계열은 식욕을 떨어트려서 보통 식당 조명으로 쓰지 않는데 특이했다. 가게 안에는 향신료 냄새가 강했다. 메뉴 가운데 하나인 양고기 요리에 쓰는 향신료 같았다. 오 씨는 남색 코트와 머플러를 나무 모양의 옷걸이에 걸며 나의 코트도 걸어주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젊은 남녀가 식사 중이었는데 아무런 대화가 없는 게 큰 소리로 떠드는 것보다 신경 쓰였다. 오 씨와 나는 사프란이 들어간 리소토와 양조림, 한우 카르파치오를 주문했다. 오 씨는 메뉴판을 펴면서 자신이 사겠다고 말했는데, 꽤나 비쌌다. 나는 이제껏 오 씨에게 받기만 했다는 사실을 새삼 의식했다. “오 씨는 좋은 사람이야.”, 사무실 사람들이 오 씨를 칭찬할 때마다 나는 오 씨답다고 대꾸했는데,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오 씨다움을 정의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오 씨는 그저 오 씨였다. 내가 계산을 마친 오 씨에게 다음번에 식사대접을 하겠다고 하자 오 씨가 가게 문을 밀며 대답했다. “내가 좋아서 그러는 거니 부담 갖지 말아요. 실은…”, 오 씨가 나를 힐끗 돌아보고는 가게 밖으로 나갔다. “받는 게 더 귀찮고 곤란해요. 대부분 마음에 안 들어서 버리거든요.” 오 씨는 왜 그런 말을 나에게 하는 것일까. 내가 볼 수 있는 건 앞서가는 오 씨의 뒤통수뿐이었고, 그것은 그저 검게 보였다. 식당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또 봐요, 그러나 서로 연락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이 이상한 기분을 일기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일 일기를 쓰며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것, 섣불리 없앨 수도 없는 것, 제 안에서 덜그럭거리는 담석 같은 것을 끄집어냈다. 글로 옮기는 동안 내 안에 있던 것들이 빠른 속도로 희미해졌기에 쓰다가 멈추는 일이 잦았다. 다음날 눈뜰 때면 전날의 기억이 까마득했다. 나는 가끔 그간 쓴 일기를 다시 읽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탓에 대부분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날, 식사 중에 오 씨는 말했다. 일본과 한국은 시차도 없는데 치리멘산쇼의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고, 매번 비행 때마다 불안에 시달린다고, 비행 내내 캐리어에 든 치리멘산쇼가 상할까 봐 초조했다고.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만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죠.” 의뭉스러운 것은 비슷했지만, 일기 속 오 씨는 현실보다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일기 속 ‘나’보다 가깝게.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세먼지에 가린 하늘은 구름도 없이 텅 비어 보였다. 그 어디쯤 오 씨가 지나온 길이 있겠지. 나는 검지로 유리창에 가상의 경로를 그렸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나’는 오 씨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좋아했다.

이민진
주로 잡문을 쓰고 가끔 형식을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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