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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뭐죠?
2017.03.04

내가 일하는 서점에는 한 권의 책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현란한 포스터란 없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관심 가는 대로 책을 뽑아 이리저리 살펴보는 순수한 기쁨을 만끽했으면 한다. 간혹 사람들이 책을 찾는 몸짓을 보이면, 나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 “이건 좀 새로울 텐데요?” 내지는 “이것도 마음에 들 걸요?” 라는 뉘앙스로 책을 건넨다1. 이 사소한 권유는 관심 없는 사람 앞에선 무안해지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내 말을 들으며 책으로 시선이 향하는 손님들의 모습은 이 일을 하는 내게 늘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나와 손님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터놓을 때 짧게라도 대화는 시작된다.

30대 초반의 남성 디자이너가 방문했다. 그는 책을 디자인할 때 책의 내용을 형식에 반영하려 하고, 책의 물성을 중시한다. 한번은 새로 도착한 책들을 둘러보다 그가 물었다. “이 책은 뭐죠?” 손에 든 책은 무난한 무선제본(페이퍼백)으로, 노란색 표지와 흰색 내지에 손글씨가 실려 있는 게 특징이다. 손님은 하필이면 내가 아직 살펴보지 못한 책을 물어본 것이다. 설명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손님을 돌려보냈다. ‘대체 손글씨로 뭐라고 쓴 거야?’ 이 책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욕구는 그렇게 찾아왔다.  

『Art At Large Through Performance And Installation Art』2

이 책은 미술사가 ‘마르하 판 메헬런Marga Van Mechelen’이  다양한 국제 저널에 기고한 에세이 모음집이다. 제목을 ‘퍼포먼스와 설치 미술을 아우른(through) 광범위한 예술’이라고 불완전하게나마 번역해본다. 개념(conceptual),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 미술 분야에서 저자의 전문성을 보여주는 책이라는데, 노란 표지에 실린 글은 메헬런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책을 디자인한 일케 헤르스Ilke Gers의 손글씨! 그녀는 왜 표지는 물론 본문까지 자신의 손글씨로 채운 것일까? 표지에 쓴 글의 마지막 두 문단을 불완전하게나마 번역해본다.

‘예술가의 존재 그리고 설치물의 일시적인 배치(location)는 퍼포먼스와 설치미술의 초점을 ‘지금’과 ‘여기’에 맞춘다. (여기 실린) 에세이 곳곳에서 되돌아본 모티프들은 행위에 가정된 진본성(authenticity), 불특정한 지속성과 예기치 않은 결과물, 그리고 새로운 형태를 향한 탐구, 의식을 취하는 것(employing)과, 버티는 것의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한계에 대한 시험을 거친 지각(perception)의 수준을 포함한다.

나는 일종의 라이브 퍼포먼스로 여기 쓰인 글들을 손으로 씀으로써 이 에세이에 언급된 전략들을 활용했다. 이것은 책 디자이너로서, 인간의 몸, 언어, 미디어의 한계, 부적절성 그리고 덧없음과의 싸움을 삶으로 가져오는 나의 시도이다. 이것은 또한 독자, 당신을 가담(participating)하는 관객으로 연루시킨다. 당신을 기계로 재생산된 정형적인 문자 대신 멋대로(rendered) 손으로 쓴 문자의 특별하고 비일관적인 성격과 관계를 맺는 시도에 대면시킴으로써, 이 책(the work)에 더욱 활동적이고 직접적으로 접속할 수(connection) 있게 한다.

일케 헤르스는 저자가 쓴 퍼포먼스의 속성을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준다. 본문의 모든 페이지 밑단에는 손글씨를 쓴 날짜, 시간, 장소를 적어두었다. 쓰다가 틀린 단어에는 좍좍 취소 선을 긋고 그 위에 맞는 단어를 써놓았다. 독자는 문자를 봄으로써 글을 읽는 동시에 그녀가 글을 쓰고 있는 시간으로 접속해 손의 동선을 볼 수 있다. 어딘가에 앉아 글을 쓰고 있을 그녀의 보이지 않는 신체를 상상할 수 있다.

그녀의 글쓰기 디자인 퍼포먼스가 글 쓰는 행위로 원본의 메시지를 옮겨 적는 일이라면, 서점 매니저의 말 걸기와 대답하기는 책을 옮기는 말하기와 행동을 수반한다. “이 책은 뭐죠?”라는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에 동의한다면, 무지한 상태를 깨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다. 인터넷에서 책의 기본적인 정보를 살피고 책이 제작된 맥락을 알아본다. 실물을 살펴보고 내용을 읽으며 핵심적으로 사용된 용어나 글의 유형, 편집 디자인 방식을 살펴본다. 저자, 디자이너 혹은 기관과 같이 책의 생산자나 생산 배경(전시, 워크숍, 작업의 결과 등과의 연결성), 내용에 담긴 메시지가 특기할 만하다면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를 활용해 많은 이들에게 알린다. 몸이 하나뿐이어서 서점의 다른 업무와 동시에 진행하다 보면 심리적으로 초조해지기도 하지만, 이젠 그런 상황에 좀 더 초연하게 대응하려고 한다.

후에 그 손님이 다시 방문했다. 나는 그에게 조사한 결과를 이야기해주었다. “제가 예전에 이런 책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는 저자의 글을 자기 손으로 옮겨 쓰는 디자인을 구상했지만, 작업이 무산돼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서점에서 이 책을 마주친 것이다. 그가 책을 구매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가 나눈 대화는 길게 남아 있기를 바란다. 생각나면 책을 찾아볼지도 모르니까. 이 책은 현재 내 일터에서는 소진되었으며 한 권만이 보유용으로 남았다.

  1. 내가 손님으로 이곳에 방문했을 때(지금은 내가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주인장이 보여준 환대가 이러했다.
  2. 16 x 23 cm, 302p, Artez Press 발행. 디자이너의 홈페이지에서 간단한 정보를 볼 수 있다. [링크]

정아람
예술 서적 출판사인 미디어버스가 운영하는 서점이자 프로젝트 공간 더북소사이어티에서 서점 매니저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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