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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멈추었을 때
2017.04.15

일시적인 이미지, 스트리밍 비디오의 한 순간은 과연 사물 (thing) 일까 ? 혹은 그 이미지가 스틸로 고정된다면, 이제는 사물인가 ? 꿈, 도시, 감각, 파생물, 이데올로기, 부침, 스침은 ? 나는 정말 모르겠다.1

그래서 그 이미지가 멈추었을 때, 또 다른 시간의 차원이 갑자기 출현했다. 움직임은 지속하는 ‘지금’의 현존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정지는 표면으로 ‘그때’의 반향을 불러온다.2


프리즈, 일시정지, 캡처
움직임이 정지한다. 프리즈 프레임3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얼굴을 줌인해 들어가는 카메라. 소년의 얼굴은 아날로그 필름 특유의 기계적 효과와 함께 화면 위에 얼어붙는다. 소년의 얼굴 한가운데서 FIN이라는 글자가 떠오르고, 타임 컨트롤바의 시간도 소진된다. «400 번의 구타 Les Quatre Cents Coups »(1959)는 2016년에야 ‘국내 최초’로 극장에서 ‘정식 개봉’했다. 그 전에는 다들 이 영화를 어디에서 보았던 걸까? 불현듯 궁금해졌다. 이 영화를 극장 스크린으로 봤다면, 과연 탄성이 터져 나왔을까? 프레임이 정지하는 순간은, 플레이어가 일시중지 혹은 중단될 때의 감각과 확연히 다를까? 이러한 연출에 감탄하기 위해서는 스크린으로부터 육박해오는 기차에 놀라 달아나는 사람들을 상상할 때처럼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게 편집 프로그램의 타임라인 위에 단일한 프레임을 얹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의 프레임을 여러 번 인화해 정지 상태처럼 보이게 한 효과라는 것을 상상해야만 한다.

구글에서 ‘400번의 구타’를 검색하면 즉각 셀 수 없이 많은 썸네일 이미지가 떠오른다. 유튜브에는 마지막 장면을 추출한 영상 클립이 각각 다른 언어로 된 제목을 달고 몇 개씩이나 올라와 있다. 전 세계 도처에서 익명의 관객들은 끝없이 로딩되는 스틸 이미지와 클립 썸네일 리스트로 영화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표해왔다. 영화의 파편들로 이루어진 이 리스트는 한 영화에 관한 거대한 기억의 네트워크를 이룬다. 혀끝에서 맴도는 어느 영화의 제목, 어렴풋한 잔상만 남은 장면, 혹은 어떤 멜로디 라인과 배경음악 리스트, 관련된 기사, 비평문, 서적, 루머 등이 네트워크 속으로 합류한다. 비록 다들 극장 스크린이 아니라 각자의 TV와 랩톱 모니터, 태블릿 PC와 스마트폰 화면으로, 때로는 비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영화를 보았더라도 말이다.

3i5의 아카이브 역시 그 네트워크 안에 있다. 그는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고화질 영화 파일에서 JPG포맷의 스틸 이미지를 캡처하고, 그 이미지들을 블로그에 아카이빙하는 것으로 영화에 대한 리뷰를 대신한다. 캡처 이미지 폴더를 열면 고전 영화를 비롯해 영상자료원이나 시네마테크의 상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곤 하는 아트하우스 영화감독들의 이름과 제목이 정렬되어 있다.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잉마르 베리만, 로베르 브레송, 브라이언 드 팔마, 프랑수아 오종, 하모니 코린까지. 디지털 시네마가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이전에 35 mm 필름으로 촬영되어 특유의 색감과 질감, 입자감 등을 지닌 영화들이다.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잔과 접시의 배치, 서로 다른 각도에서 비춘 거리, 아웃 포커스로 흐려진 전조등 불빛, 장면 위에 삽입된 타이포그래피, 강렬한 콘트라스트로 분할된 화면…. 3i5은 프레임 안의 사물과 인물, 빛과 색의 배치 등 미장센적 요소에 관심을 둔다. 때로는 영화의 휴지부나 디졸브로 인한 중첩, 화면의 왜곡 등에 주목하기도 한다. 특정한 이미지를 캡처하기 위해서는 같은 구간을 여러 번 반복 재생하고, 연속 캡처 기능을 사용해 여러 프레임을 포착한 후 선별하는 나름의 세공 과정이 필요하다.

포획된 스틸 이미지는 파일명 순서대로 차곡차곡 폴더 속에 정렬된다. 캡처된 이미지의 파일명에는 각 이미지에 관한 정보가 남아 있어4, 이미지의 변환과 유통의 경로에 관해 얼마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P2P로 구할 수 있는 고화질 동영상은 대체로 DVD나 블루레이 디스크를 리핑, 인코딩한 후 유통하기 쉽게 묶은 MKV5포맷 파일이다. 동영상 플레이어의 캡처 버튼을 누르면 기존 파일명과 확장자 뒤에 ‘시/분/초/프레임’이 기입된 JPG파일이 생성된다. 3i5은 한 영화에서 수십 장, 때로는 수백 장의 이미지를 캡처하고, 이미지의 출처가 된 영상 파일은 곧 삭제한다. 그러니까 3i5이 애착을 갖는 것은 영화 자체라기보다, 파일에서 추출한 수천 혹은 수만 장이 넘는 정지 이미지들이다. 이 때 스틸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영화로부터 파생되었지만, 연출과 편집을 통한 숏의 결속, 내러티브, 동조화된 사운드, 시각 잔상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움직임 모두로부터 절연된 채 영화라는 환영으로부터 탈각된 이미지이다. 또한 복제되고, 압축되고, 파편화되고, 전송되고, 배포되고, 변환되고, 재생산되는 디지털 이미지 유통 경로의 한 절단면이기도 하다.

이 스틸 이미지를 불러들여 임의적인 시퀀스로 재생하거나 슬라이드쇼처럼 프로젝션할 때, 스크린에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이미지는 과연 무엇일까? 여러 단계의 복제와 변환을 거친 35mm 필름이 여전히 환영으로서 영화라는 위상을 갖고 있다면, 이 때 스틸 이미지는 영화적인 것을 보존한다고 할 수 있을까 ? 혹은 이미지를 스크리닝할 때 혹은 전시는 스틸 이미지를 스크리닝screening 할 때 차단되는screened 것이 있는가? 스틸 이미지는 단지 영화의 부차적인 파생물일 뿐인가? 스틸 이미지는 일종의 대항서사가 되거나 완전히 자율적일 수 있는가? 혹은, 화면 위에서 잠시 지속되는 동안 무엇이 발생하는가?

스트리밍, 자동재생, 랜덤 이미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된 후 우리는 더이상 저화질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화질은 결국 각 디바이스에 적합한 크기, 품질, 파일 포맷과 유통 방식에 최적화된 규격에 따라 결정되므로, 일단 영화가 간편하게 눈앞에 스트리밍되는 데에, 구하기 힘든 영화의 이미지를 소환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다. 우리는 작은 크기의 조각으로 나누어졌다가 모니터 화면 위에 잠시 합류한 후 이내 휘발해 사라지는 스트리밍 파일로 영화를 경험하는 데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중이다. 스트리밍되는 이미지를 그저 흘려보내거나 화면 위에 잠시 붙박아 두고, 몇 배속으로 재생 시간을 단축하거나 컨트롤바를 건너뛰면서 몇 장의 스틸 이미지로 줄거리를 파악하기도 한다. 웹에서의 영화 경험은 때로 우연에 좌우되므로, 위치감각도 없이 토끼굴에 빨려들어가듯 당도한 유튜브 어딘가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더빙이 덧대어진 영화를 조각 조각 나누어져 열악한 상태로 업로드된 버전으로 만날 때도 있다. 유튜브 저작권 체크 알고리즘이 인식하지 못하게 하려고 음원을 뭉개거나 재생 속도와 화면 비율을 변경한 다음 조악한 효과를 입힌 영상도 있다. 영화 클립은 곧 유튜브의 임의 자동재생 기능을 따라, 뮤직비디오, 인터뷰, 게임 플레이, 축구 중계 그리고 정체 모를 온갖 영상으로 넘어간다. 보고 싶은 영화를 구해 보기 위해 온갖 페이크 파일과 정크 비디오 더미를 헤치고 다닐 때, 우리는 또 한 번 그 영화가 무엇과 인접해있는지 체감한다.

우리는 관객인 동시에, 각자의 모니터와 스마트폰 화면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온라인 VOD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자이다. 또한, 익명의 P2P 파일 시더seeder이자 피어peer, 리처leecher로서 특정한 영화의 유통과 순환에 연루된다. 스크린 위에 머물렀다 흩어지는 순간들을 기억하려 애쓰는 대신, 특정 구간이 무한히 반복되는 루핑 이미지인 GIF 움짤을 만들고, 캡처한 이미지를 재료로 리믹스하거나 매시업하면서 적극적으로 연성한다. MP4는 JPG로, GIF로 또다시 MOV로 확장자가 바뀐다. 이렇게 연성된 이미지는 또다시 각자의 PC 메모리나 클라우드에 축적된 채 새로 업데이트된 데이터에 밀려 잊혀지거나, 우주 쓰레기처럼 예측할 수 없는 인터넷 어딘가로 떠돈다. 영화는 무작위로 펼쳐져 있는 랜덤 이미지 우주의 일부로서, 동시대의 다른 이미지와 상호작용한다. 때로는 우연히 인접한 이미지와 어떻게 계열화하느냐에 따라 다른 효과와 의미가 발생한다.

스틸 이미지가 잠시 화면 위에 머물 때, 다른 이미지와 함께 깜빡거릴 때, 기억 속의 영화는 유령처럼 화면 주변을 맴돈다. 그 너머에 여전히 있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실체가 없음을 알면서도 무언가 그곳에 존재하듯지각하는 가성환각pseudo-hallucination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환각 혹은 이중적 지각 속에서 이미지는 깜빡이며, 우리에게 응시하고, 탐구하고, 연루되도록 요구한다. 이미지는 사라진다. 이미지는 구축되고 허물어지며 갱신된다. 이미지는 이동하고 겹쳐지고 기워지고 분열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이미지는 진동한다. 빛으로, 픽셀로, 흔적으로.


  1. Daniel Miller, “Materiality: An Introduction”, Materiality, Duke University Press, 2005, p.7.
  2. 로라 멀비, 『1초에 24번의 죽음』, 이기형, 이찬욱 옮김, 현실문화, 2007, 17쪽.
  3. 영화의 움직임을 한 프레임에 정지시켜 스크린 위에서 지속시키는 기법.
  4. 파일명은 보통 영화명 (국/영문), 제작연도, 해상도, 원본 소스, 영상 압축 코덱, 오디오 압축 코덱, 파일 릴리 즈 그룹, 배포 사이트명 등으 로 이루어져 있다.
  5. MKV(Matroska multimedia container for Video) 파일은 자막을 별도 파일로 지원하는 AVI 등 기존 파일과 달리 화질 저하 없이 다양한 영상과 음성, 자막 파일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개방형 표준 컨테이너 포맷이다.

김신재
화이트큐브와 블랙박스를 오가며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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