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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흰 개가 있다
2017.04.15


여기 흰 개가 있다.

나는 흰 개와 산책을 하러 공원에 나와 있다. 흰 개는 나의 개. 흰 개는 공원의 개. 흰 개 는 흰 개. 흰 개는 무엇을 좋아하나. 흰 개는 흰 개만을 좋아하지. 흰 개는 자주 없어지 기도 하지. 나는 흥얼거린다. 나는 흰 개와 함께 공원에서 달렸다. 나는 저 멀리 달렸 고 흰 개는 나를 따라 달려온다. 흰 개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더 빨리 달리면 흰 개 는 앉아서 가만히 있다. 나를 쳐다보기만 한다. 나는 뒤로 돌아 흰 개에게 다가가지. 흰 개는 나를 잊은 것 같다. 흰 개는 나를 잊은척 하나. 나는 흰 개를 쓰다듬고 안아 들었다. 흰 개를 바라본다. 흰 개의 눈과 입술. 눈과 입술의 흰 개. 흰 개의 입술 위로 검은 털 한 가닥이 나 있다. 너무 신기해. 검은 털이 너무 신기하다. 흰 개도 늙어가나 보다. 검은 털이 났다는 게 늙어감의 증표인가 보다. 나는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여기 흰 개가 있어요. 흰 개인데 검은 털이 한 가닥 났어요.

흰 개를 안은 채 나는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사람들은 나와 흰 개 주위로 몰려들었다. 흰 개를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입술 위에 난 검은 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검은 털. 검은 털이 난 흰 개. 흰 개에 난 검은 털. 검은 털은 흰 개를 좋아하나 보다. 검은 털은 흰 털을 좋아하나 보다. 그런가 보다. 나는 다시 검은 털을 살펴본다. 검 은 털을 손가락으로 만져 본다. 검은 털은 날리지 않는다. 사람들아. 사람들아. 여기를 봐요. 여기 검은 털을 만져 봐요. 사람들은 한 가닥 검은 털을 만진다. 한 명씩 기다린 후 만진다. 나는 사람들에게 흰 개를 맡긴 채 공원을 산책한다. 공원을 돌면서 흥얼거린다. 공원의 나. 공원의 나. 공원의 흰 개. 공원의 사람들. 흰 개의 공원. 여기는 흰 개의 공원. 여기는 사람들의 공원. 나는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있다. 빨리 달린다. 아주 빠르게. 흰 개는 또 나를 잊었으려나. 사람들에게 맡긴 흰 개를 보고 싶어. 나는 달렸다. 산책을 잊은 채로 달렸어. 다행히 저기에 흰 개가 있었다. 흰 개는 공원에 혼자 있다. 사람들은 가고 없었다. 흰 개는 나를 보고 짖는다. 흰 개를 보자 반가워서 나도 짖는 시늉을 한다. 반가워. 흰 개야 반가워. 흰 개는 공원의 개. 공원은 흰 개의 공원. 나는 공원의 흰 개와 흰 개의 공원 사이에 서 있지. 나는 흰 개를 안았다. 흰 개야. 나의 흰 개야. 흰 개를 바라본다. 근데 검은 털 한 가닥이 보이지 않네. 검은 털이 없다. 나의 흰 개야. 공원의 흰 개야. 나는 흰 개에게 개의 시늉을 하며 물어 보지만 역시 대답할 리 없지. 대답을 할 리가 없어. 검은 털은 어디로 갔니. 물어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없었다. 나는 슬펐어.

흰 개는 검은 털이 없는 개. 흰 개의 검은 털은 뽑혔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렇게 되었다. 이상한 말을 나는 슬픔에 잠겨 흥얼거렸다. 흰 개는 검은 털이 없는 개. 흰 개의 검은 털은 사라졌어. 사람들은 가 버렸고 검은 털도 사라졌다. 나는 슬펐지. 나는 슬펐어. 흰 개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면서 슬퍼했다. 그렇게 걸어가니 집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흰 개는 나의 집. 나의 집은 흰 개. 나의 개는 흰 집. 나는 흰 집의 개. 개의 집은 흰 나. 나는 흰 개와 나란히 오래 걸었지. 그 후로 오랫동안 검은 털에 대한 꿈을 꾸었다. 검은 털을 한 내가 꿈에 자주 나왔다.



공원을 잃었다. 공원 옆에 있었는데, 흰 개와 흰 개를 흉내 내는 사람과 함께 공원 밖을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공원을 잃었고 그러나 흰 개는 공원을 찾으려 하고 흰 개를 흉내 내는 사람도 마저 공원을 찾고 있다. 그러다가 흰 개를 흉내 내는 사람은 허리를 폈다. 일어나서 공원을 영영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한다. 흰 개는 잃은 공원을 향해 한 참을 짖고 있고 나는 그런 흰 개를 내버려 둔 채로 사람과 함께 공원 밖을 산책한다. 한 바퀴 돌면서 내가 바라보는 건, 사람의 옆모습, 옆모습 뒤로 난 옆모습, 그렇게 옆 모습의 입면은 이어지고, 그렇게 길은 생성되는 것 같고, 하지만 내 옆모습은 내가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려 반대쪽을 쳐다보면 그쪽은 텅 빈 것만 있고 그래서 공원이라고 부르고 싶어, 그렇게 부르자, 다시 옆 사람을 쳐다보며 말하지만 앞으로 걷기만 한다. 한 바퀴를 다 돌면서 공원을 처음 잃었던 지점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흰 개야. 흰 개야. 여기서 흰 개를 잃은 것 같다. 그런 것 같다고 옆사람이 말한다. 나는 엎드렸지. 엎드려 흰 개를 그리워했다. 옆 사람이 나를 쓰다듬는다. 상심하지 말라며 흰 개의 시늉을 했다.

안태운
시집으로 『감은 눈이 내 얼굴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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