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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미사 -y
2017.03.04

아영 씨께,

이렇게 다시 뵙게 되다니, 역시 서울은 참 좁은 도시예요. 제 이름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아영 씨의 이름을 끝내 떠올리지 못했지요. 저는 얼굴들을 지나치리만치 잘 기억하는 반면, 이름은 매번 제때 떠올리지 못하곤 하네요.

작업실에서 아영 씨의 회화 작업을 바닥과 의자 곳곳에 둘러 세워놓고 제가 형용사 같다, 는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영어 형용사 중에서도 명사에서 파생된 cloudy, foggy, airy, creamy, leafy, glassy, watery, dusty, rainy, flowery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습니다. –y가 어미로 붙어 만들어진 형용사들 말이지요. 영어보다 의태어가 발달한 국어에서는 그렇게 명사 뒤에 접미사가 붙어 형용사가 되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아영 씨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 것이 조각 케이크, 꽃다발, 유리컵, 아이스크림 등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란 어렵지 않지만, 사실 아영 씨의 기억을 투과한 후 캔버스에 착지한 것은 형용사에 가까운 감각일 것입니다.

회화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언제나 참 어렵고 피하고 싶은 일이라, 다른 이야기로 잠깐 넘어가겠습니다. 필립 K. 딕의 소설 원작을 영화화한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2002)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범죄 예방을 목표로 하는 '프리크라임Pre-Crime’ 영상팀은 세 명의 예지자들이 보는 미래의 영상을 통해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현장에 당도해 범인을 검거하지요. 예지자들은 미래를 예견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과거 사건의 잔영인 ‘데자뷔déjà vu’에 시달리는데, 그 기억들은 보통 불필요한 데이터로 취급되어 삭제됩니다. 원작 소설의 치밀함은 아직 미처 확인하지 못했지만, 뇌인지과학을 공부하는 친구에게 듣기로는 영화가 기억 혹은 회상의 속성과 메커니즘에 관해 꽤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요. 뇌는 경험에 대한 기억과 상상에 대한 기억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거와 미래의 이미지, 상상이나 꿈에 관한 기억 모두가 실은 같은 메모리memory에 저장되는 것이죠. 영화에서 예지자들의 영상이 그러하듯이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감각 기억sensory memory은 그리 상세하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머물렀다 휘발하는 감각 정보는 아마 대개 불필요한 데이터로 취급될 거예요. 감각 양상에 따라 서로 다른 감각 기억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시감각에 관한 영상 기억iconic memory과 청감각에 의한 잔향 기억echoic memory 이라고 합니다. 이 감각 기억은 대부분 몇 초 안에 사라지고 마는 원초적인 형태로, 인지 체계에서 부호화, 정교화 되어 저장되기 이전의 기억인 것이죠. 부호화되기 이전의 감각 이미지들은 흔적으로만 남고 이내 휘발해버립니다.

아영 씨도 아마 어떤 꿈이나 느낌 같은 것을 붙잡아두려 애쓰신 적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감각의 흔적만 기억으로 남을 뿐 이내 흐릿하게 사라져버리곤 하지요. 제가 글을 쓰면서 그런 흔적들에 의지하고 또 접근하려 애쓰는 것 처럼, 아영 씨가 작업할 때 떠올리시는 것도 그런 흔적이 아닐까 하고 추측합니다. 아영 씨의 회화에는 집과 작업실, 일터 등에서 아영 씨의 눈과 손을 거쳐 간 사물들이 투사되는데, 아마 어떤 것은 복원된 감각 기억이고 어떤 것은 기억의 흔적이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복합적인 방식으로 환기, 중첩된 이미지들이 아영 씨의 그림 위에 케이크 시트와 필링처럼 레이어를 이루는지도 모르겠다고, 저는 멋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케이크 시트와 필링은 아마도 형용사와 가까운 것이지 않을까 하고요. 회화 속의 대상과 형용사는 일대일로 대응하는 대신 다른 형용사들을 불러냅니다. 이를테면 ‘크리미creamy’한 ‘크림cream’이 ‘칙칙한dusty’ ‘먼지dust’가 아니라, 크림 같은 솔방울, 칙칙한 꽃다발, 안개 자욱한 인물….

글을 쓰다 보면 이따금 형용사가 충분치 않아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빛과 조명은 환하다거나 따뜻하다거나 붉다거나 희미하다는 형용사들로 수식되곤 하는데, 빛이란 게 실은 시각적일 뿐만 아니라 촉각적이기도 하고 조도에 따라 다른 것이지요. 빛과 어둠이 서로 상대적인 것이라, 어둠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한 빛의 상태를 말이나 글로 묘사하거나 기록해두려고 시도하다가도 이내 불가능하거나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형용사를 쓰는 것을 더 자제하게 되기도 해요. 그래서일까요, 아영 씨께서 조명 연작을 그리신 것을 보고, 실없이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영 씨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조금 신기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영 씨의 한글 이름은 세 가지 모음과 한가지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o이 다섯 개나 들어가기 때문일 거예요. 영문으로 표기할 때는 두 개의 y가 들어가는군요. 혹시나 다시 이름을 잊어버리면 다섯 개의 o과 두 개의 y를 단서로 하여 떠올려 보겠습니다. 아무리 제 기억력이 나쁘다 해도, 이름을 잊어버리는 일이 다시 있을까 싶기도 하군요.

두서없는 편지를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요. 아영 씨가 몇 달째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던 작업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합니다. 조만간 작업실이 아닌 어딘가에서 볼 수 있기를.

김신재 드림.

김신재
시각예술과 영화 부문에서 경험치를 쌓았다. 영상 환경과 관련한 큐레토리얼 실천과 프로덕션에 관심을 두고 지속을 모색하고 있다.